채울 수 없는 가슴 한구석의 병 아닌 병 때문에
또 이렇게 며칠간을 방황하고 있다.
빤히 죽을 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속성 때문에
불을 찾아드는 불나비처럼 어리석은 짓들을 하고 있다.
마치 혼자서만 세상을 사는 것처럼
다시 한번 혼란과 불안 속으로 떨어져 버리는 자신이 슬퍼 보여 몹시도 슬퍼 보여.
너와 같이 있는 시간들은 언제나 가슴 충만한 시간들이었는데.
참 마음 편안한 시간들을 얻을 수 있었는데.
어제오늘 극도로 혼란한 생활에 애써 자신을 사랑할 수 있노라 자신했었던
엊그제의 좋은 감정들을 하나 둘 놓쳐 버리는 슬픔에 잠겨버린다.
이 가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코스모스를 아름답게 볼 수 있었고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사랑을 얻고 싶어 정말 열을 올린 계절.
슬픔보다는 기쁨을.
항상 어렵다는 생각을 지니는 것보다는 훗날의 희망을 더 생각하게 되었다.
널 만남으로 인해서.
조금 더 쓰면 울어 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
내가 네게 조금이라도 진실 된 행동을 보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날 네게 안녕을 말하자.
보고 싶어.





[책 소개글]
1985年부터 1988年까지,
연인 사이던 아빠가 엄마에게 쓴 편지 50통을 엮은 책입니다.
그 시절의 사랑과 글을 통해, 현재의 사랑과 편지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결혼 27주년을 기념해 그 딸들이 기획하고 디자인했습니다.

[작가의 말]
사람은 망각을 잘 한다.
그렇게 빛나던 청춘의 시간이 있었는데 잊고 살았다.
21살에 시작하던 편지가 생활인이 되면서 끊겼다.
그 사람과 결혼해서 편지의 기능이 반감되었을 수도.
치기와 순수, 그리고 가슴 뛰는 동경, 미래, 불안감, 사랑의 기대.
젊은 날의 기억을 잘 갈무리해준 소중한 가족과 그대에게 감사의 편지를 드린다.

[목차]
1985年
조금 더 쓰면 울어 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
1986年
선잠에서 깨어나 꿈으로만 끝나버린 우리들의 만남이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봄비가 하루내 쉬임없이 내리고 있다.
1987年
네 생각을 하면 못난 자신이 한없이 더 미워진다. 뭐가 보고 싶다고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1988年
불빛이 너무 어두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엉망이 될 것 같다.